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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ProP.2 “버틴다는 것에 관하여”

얼마전 트위터에서 ‘#제1회_여성최애_자랑전’이란 태그가 한참 돌았는데요. 영화 ‘헝거게임’의 여주인공 캣니스도 있길래 저도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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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을 잠깐 설명하자면 캣니스는 여동생 대신 일종의 배틀그라운드에 뽑혀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출전한 가난한 동네 출전자들과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우승하는 게임에 출전하게 됩니다. 이 살육전을 기획하는건 각 구역의 가난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고요. 한마디로 니들끼리 싸우고, 분노하고, 죽이고 살아남으라는건데요. 하지만 캣니스는 결국 배틀그라운드 안에서 우승이 아닌 연대를 선택하고 경기시스템을 파괴하는 활을 날리며 시스템을 거부하는 이들의 상징이 됩니다. 좀 뻔하긴 합니다만 캣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의 미모와 카리스마는 결코 뻔하지 않던;;; (흑흑)

제가 캣니스에게 끌린건 그가 원치않는 경기장에 등떠밀려 들어왔지만 도망치지 않고 결국 버텨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캣니스는 버티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줬지만요. 어릴땐 떠나는 사람이 멋져보였지만 지금은 남아서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이 멋져보인달까. 그리고 그렇게 가끔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되고,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고, 그런 이들이 모여 ‘세력’이 되는건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작은 버팀들이 쌓여 일부의 극단적인 종교론자들이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를 인식하고, 언급하고, 신경쓰는 날들이 왔을때 스스로 당황해 다시 숨지 않도록 연습도 해야겠고요.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페트라 켈리가 여성문제에 있어 한말 중 이런 말도 있죠.

“진정으로 새로운 여성이 태어나려면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남성이 태어나야 합니다.”

자존감이 사라진 빈곤한 영혼에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교리를 채운채 증오를 휘두르는 광신도들이 아닌, 평범한 회사동료나 친구들이 우리의 진정한 소통 대상이 되야합니다. 그렇지만 그들과 이야기할때 갑자기 돌출된 동성애 이슈에 놀라 얼버무리거나 의도치않게 포비아 흉내를 내며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덮어버리게 되는 경우, 속상하죠.(feat. 한밤의 이불킥) 하지만 나의 의견이든 존재든 모든 드러내는것은 에너지와 연습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하루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시길, 어쩔수 없이 가끔은 지더라도 버틸만큼은 종종 이기며 그 에너지와 연습할 기간을 확보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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