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차까지 보고 쓴 글로,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남자친구> vs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네, 드라마말입니다. 보고계시나요? <남자친구>는 박보검이 동화호텔 신입사원으로(a.k.a. 청포도), 유력 정치인의 딸이자 재벌가와의 이혼경력이 있는 차수현 동화호텔 대표, 송혜교와 멜로를 선보이는 드라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빈이 투자회사 대표로, 박신혜가 스페인 유스호스텔 주인으로 나오며 AR기반 롤 플레잉 게임을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여기에 게임 자동로그인 오류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각 드라마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아래 링크들로 대신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남자친구> 공식홈
제가 인상깊게 본건 드라마보다 연기력 비판 혹은 칭찬에 관한 댓글들이었습니다. <남자친구>는 박보검이 너무 평면적인 연기를 펼친단 비판을 받았고, 성인 남자가 왜 저런 말투와 행동을 하냔 댓글도 있더군요. 반면 <알함브라..>에서는 현빈이 딱 맞는(!) 캐릭터를 만났다며 칭찬을 듣고 박신혜는 왜 매번 신데렐라 역할이냐며 지겹다는 댓글이 상당수 보입니다.

<남자친구>는 줄거리에서 보듯이 그동안 온갖 20대 여배우들이 했던 밝고, 순수하며 건강한 캔디 캐릭터를 박보검이 연기하는데 그 전형성으로 인해 ‘미러링’ 드라마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박보검의 이 연기논란 조차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배우들이, 그 빈약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큰아버지뻘 되는 상대 남자배우에게 혀짧은 소리나, 반대로 지나치게 당당하고 맑은 목소리로 실’땅’님이나 이사님을 외쳐야했는지, 그로인해 얼마나 연기력 논란에 휘말려야 했는지를 보여주는데요. 작가가 얼마나 의도했는진 모르겠지만 이 간단한 스위치만으로도 <남자친구>는 매우 전복적인 텍스트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함브라..>속 유진우 대표, 현빈에겐 칭찬이 쏟아집니다. 딱 맞는 역할을 맡았다고. 대체 현빈에게 ‘딱 맞는 역할’이란 뭘까요?
투자회사 대표로 자기욕망에 충실한채, 그 욕망이 일으키는 온갖 소동속을 헤쳐나가는, 각종 설정을 충분히 부여받아 그에 맞게 소리도 지르고, 안타까움도 내비추고 멋진 액션까지 해내는.. 현빈은 이런 맥락하에 역시 현빈이란 칭찬을 듣습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맡은 박신혜는 드라마틱한 설정이라 할만한게 없는 일상 속에서 코미디와, 멜로 연기를 모두 디테일하고도 안정적으로 보여주지만 칭찬은 예쁘다 정도가다입니다.
이 영민하고 담백해보이는 배우에겐 매번 신데렐라 역할이냐며 지겹다는 댓글이 달리지만 왜 100조짜리 사업을 눈앞에 두고 강렬히 욕망하는 것과 동시에 이것을 잃을까 우울하기까지한 사업가같은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알함브라..>에서 현빈은 자기 욕망만 집요하게 추구하며, 상대를 속이거나, 불법행위도 서슴치 않는 냉정한 투자회사 대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3회가 끝나자 현빈이 그의 엑스와이프와 그녀가 가진 아이를 위해 죽은(심지어 자기때문에 죽은) 엑스와이프의 현재 남편인 차대표를 구하기 위해 게임속으로 들어갈거란 댓글을 달더군요.
대체 현빈의 어떤 캐릭터적 면모가 갑자기 그런 구원자나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할거란 기대를 갖게 하는지 신기했습니다. 냉혹하고 이기적인 남성캐릭터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실은 현실적이고, 능력있고, 자기가 후려치고 있는 여자주인공에게 나중에 나 싫어할까봐 걱정된단 멘트를 날리는 로맨티스트로까지 자리매김할 수 있는걸까. 대체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게 맞는지 의구심이들더군요. (알고보면 내 눈에도 스마트렌즈가..?!)

사실 <알함브라..>의 송재정 작가는 이전에도 ‘남캐몰빵’이란 전문용어(?)를 던질 수밖에 없는 드라마들을 써왔습니다. <나인>, <인형왕후의 남자>, <삼총사>, <W> 그리고 <알함브라..>까지. 가장 최근작인<W>는 후반부에서 한효주가 분한 여주인공을 왜 수동적이고 하는 역할 없이 밍기적거리게 하다 결국 주연이라고 하기 어려운 분량과 함께 묻어버리다시피 하죠. 그리고 <알함브라..>에서도 적어도 4회까지는 박신혜도 한효주와 큰 차이가 없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게임속 캐릭터인 엠마로서,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줄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미모의 악사로 현빈의 마음을 뺐는 캐릭터란것 외엔 정체성과 역할이 제한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소재와 스토리로는 신선한 <알함브라..>지만 볼수록 점점 이 드라마가 가진 젠더적 지향과 표현, 역할상 한계로 인해 답답하단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그에 비해 <남자친구>는 청포도가 감당이 안될때도 있지만(마치 어린시절 <전설의 고향> 볼때처럼 애인 어깨뒤로 숨습니다) 젠더 미러링이란게 이렇게 간단히 전복적 텍스트로, 사회성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여하튼 앞으로 두 드라마에서 어떤 구조나 스토리, 캐릭터를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아주 단순하고도 쉽게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할수 있는 장치가 ‘젠더 역전’이란 것은 알겠더군요. 제가 아는걸 작가님들이 모를리 없을테니 그저 더 많은 드라마 작가들과 다른 창작자분들이 아는 바를 실현해주시길 바랄뿐입니다. (왠지 너무 어렵다면 일단 남자배우라고 생각하고 쓰시고 다 쓴뒤 그 캐릭터 성별을 여자로만 바꾸시면됩니다. 참 쉽죠?!)

그래서 그 새롭다는 칭찬 일색이던 <W>에서 여주인공이 모든 세계관과 사건을 촉발시키는 웹툰 작가의’딸’로 등장하고, <알함브라..>에선 이 게임을 만들고 사건을 촉발시킨 프로그래머의 ‘누나’고 ‘보호자’라 얼떨결에 불로소득으로, 모든 키를 쥐게 된다는 설정류가 더 이상 당연한듯 등장하지 않았음합니다. 더불어 이런 캐릭터들의 등장과 젠더적 활용을 통해 새롭다는 표현 안에 구조나 스토리가 아닌 캐릭터 ‘젠더’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