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꽃피는 봄이 왔구나.
몇 주 전, 삼천포라는 조그마한 시골 해안도시에 사는, 친구 집들이 겸 기분전환 겸 갔다가 벚꽃보러 온, 넘쳐나는 연인들과 가족들 틈에서, 한없이 외로워져 왔다. 그녀도 어디선가 이렇게 사랑하는 연인과 즐거워하며 환하게 웃고 있을 생각을 하니, 이 광활한 우주속에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날 그렇게 미워하니, 얼른 돌아와
언닌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자리 그대로 있어~~”
받지않는 전화, 읽고씹어버리는 톡, 톡이 안되니까 문자로 남겨놓는 메시지,
그녀는. 필사적으로 굴었다.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역시 면책사유는 잘 만들어 놓으시는군요..
씁쓸해졌다. 내가 힘들어 손을 뻗었을 땐 외면해놓구선. 윗사람이 챙기라고 시키니까 이러는 거에요, 그냥 차갑게 구는 게 더 나았는데. 실망입니다.
휴우.
우리는 그냥, 어느정도 불편함 가진 동료로 남았어야 했는데. 어디서 멈춰야 했을까..
성탄절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할 때에 칸막이 넘어 신부님이 나를 알아보실텐데도 나는 감히 고백했다.
“감사하게도, 지금껏 기다렸던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해주셔서, 이 은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그사람과 노느라 자주 미사도 빠지고 일도 소홀히하고 의무도 게을리한 것 용서해주세요-”
그랬다. 워크숍을 다녀온 뒤 어느 주말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고, 넘쳐나는 감상을 그녀에게 건넸다가, 마침 브런치를 먹을 참인데 함께 와서 먹자는 그녀의 제안을 시작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더랬다. 주말이고 평일이고 점심과 저녁을 함께먹고, 한창 레몬소주와 깔라만시에 빠져있던 그녀에 맞춰서 1주일에 3~4일은 술을 마셨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집에서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애정문제로 힘들었던 것 같다. 항상 술을 필요로 했고, 마침 비슷하게 마시고 웃고 떠들고 취하는, 내가 딱 좋은 술친구였으리라. 지금생각해보면. 그녀는 전형적인 일반녀인데.. 방탕해진 나를 염려해 충고해주던 동료와 가족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와 어울렸다. 술취해서 늘어놓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은 남자를 혐오한다 했었고, 술취해서 나에게 해대는 뽀뽀나 스킨십은 내가 오해하기 딱 좋았다. 일반녀들도 곧잘 그런다고, 백퍼 스트레잇이니 넘어가지말라고, 만류하던 이쪽지인들도, 그녀의 언행들, 나와 맞닥뜨려진 상황들이, 혹시나 어쩜, 고백해보라고 할정도였으니까. 내맘, 같은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이브, 함께 파티해요-
성탄미사, 업무상 저녁약속도 다 깨고 그녀에게 제안을 했었는데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그날을 기다리는 그녀였다.
그녀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이브. 백화점에 가 쇼핑을 하며 서로에게 선물을 사주고, 영화를 보고, 집에서 만들어 먹을 장을 보고, 그날은 여느 연인같은 데이트를 했던 거 같다. 그날 먹은 와인, 샴페인, 소주,,, 자신에게 참 특별한 샴페인, 소중한 사람이랑 먹으려고 아껴뒀던 거, 이제 따노라고, 그녀말에 한껏 기운을 얻어, 나는, 그날밤 내 일생에 처음, 내 성정체성을 고백하며, 여차하면 직장을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 전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 사귀었던 남자들,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들, 말하면서도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생 벽장일줄 알았는데,, 이렇게 내가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그사람이라는 것도, 모두가 가슴이 벅차면서도 두려웠다. 그녀는 잠자코 모든 걸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