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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백범 일지에서 보이는 매우 현대적인 사상들

그동안 꼭 읽고 싶었던 책 중 하나인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를 읽고 놀라운 점이 많았다. 원래 김구 하면 ‘(과격한)민족주의자’ 거나 ‘공산주의자’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공산주의자는 아니고 민족주의자는 맞으나 자민족의 우수성만을 우긴다거나 그것을 근거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등의 배타적/우월적 민족주의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백범 일지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관들이 거의 백년 전에 이미 주장되었다는 점이다. 자크 아탈리의 ‘리더는 미래를 읽고 예견하는 능력이 뛰어난 자’ 라는 말이 와닿는 지점이다. 그래서 주로 내가 몰랐던, 놀라웠던 포인트 위주로 몇 가지 추려서 기록해 두고 나 스스로도 두고두고 되새겨 보고자 한다.

여성의 교육에 대하여

김구 본인은 너무나 옛날 사람이라 어릴적에 근현대의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신분이나 성별을 넘어 평등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대목은 ‘앞으로는 여자도 무식해서는 안된다’ 거나 본인과 혼인할 여자는 먼저 얼굴 보고 최소 1년간 본인이 이것저것 공부를 시킨 후에 서로간에 마음이 맞으면 그때가서 결혼을 하겠다는 (그래서 중매 할머니가 매우 곤란해 한다…) 당시로서는 특이하다 못해 별나다 소리를 들을만한 결혼관이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조혼 풍습이 남아있던 때였고 미리 얼굴 보고 결혼하는 것을 꺼리던(…) 시대였다. 누구 가르치는게 평생소원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럴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추후 김구는 예수교회의 도움을 받아 사범강습을 받고 교육자로 활동 하게 된다.

동성애 커플

일명 ‘쓰치다 사건’ 으로 감옥에 있던 김구는 탈옥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때 감옥 안에서 남남커플 두명과 다른 죄수 두명이 같이 탈옥하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게 된다. (특히 게이는 애인까지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진짜 계속 매달림…;;) 흥미로웠던 것은 책 전반의 모든 에피소드에 늘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음에도 게이커플의 사랑에 대하여는 별다른 편견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탈옥 상황이 불리해져서 ..얘네들을 내가 꼭 데리고 나가야 하나 잠시 갈등하다가 ‘죄인들이라고 그들에 대해 죄를 지어서는 안되겠지’ 하고는 게이들 먼저 내보내고 겨우 탈옥에 성공한다. 그리고 무려 성공한 탈옥이 된다 (…).

수감자/전과자에 대한 태도

신민회 사건으로 인천교도소와 서대문형무소에 약 4년간 번갈아 수감되며 옥중소회를 남기는데 함께 수감중인 죄수들 중에 요즘말로 정말 답없는 양아치들이 많구나… 하면서도 ‘감옥이라는 곳은 교화를 주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 거나 ‘감옥을 졸업한 사람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동등하게 대접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또한 수감 환경에 관한 고민은 물론 관리자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에 불가능했던 일들일 뿐만 아니라 저절로 현대 노르웨이의 인권교도소가 떠올랐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김구의 판단

이건 굉장히 명확하게 민주주의가 더 훌륭하다고 김구는 단언한다. 아예 러시아와 미국의 정치 형태를 비교해서 국민주권이 투표권에 의해 보장되고 그들의 대표를 스스로 선정하는 방식이 더 느리기는 하지만 더 좋은 방식이기 때문에 미국이 더 낫다 라고 말한다. 김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아마도 오해가 있다면 상해임시정부 시절 김구가 정리정돈한 여러 정당과 파벌에서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이었기에 그런 것 같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

이부분 또한 상당히 현대적인데, 김구는 정치형태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우수하며 다만 가장 큰 위험요소는 독재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언론의 자유를 손꼽는다. 김구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는 독재를 가장 혐오하는데 본인이 보기에 이들이 개인의 독재 뿐만이 아니라 집단적 독재를 통해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 했다.

“독재 중의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개인생활에 너무 잘게 간섭하는 것은 좋은 정치가 아니다”

나의 소원 중

다양성, 환경과 성장에 대한 관점

백범 일지의 뒷부분은 ‘나의 소원’ 이라는 연설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그런 구성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글 후반부의 우리는 자유로운 (또한 자유롭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자유는 ‘꽃을 꺾을 자유가 아닌 꽃을 심는 자유’ 여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이부분 즈음에서 아주 미래적인 휴머니즘/환경론이 가시화된다. 종교와 사상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적인 풍토가 형성되어야 하며 아울러 과학적, 기술적 발전이라는 것도 더 필요가 있을까? 이만하면 이제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살기 위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던진다. 기술 발전의 폐해로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극단적 개인주의로 인해 공동체적 삶의 가치관이 망가진다고 지적받는 요즘의 삶에 경종을 울린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분량도 많아서 그 내용 안에 담겨진 깊은 뜻을 다 헤아리려면 부족하고도 부족하다. 그러나 과연 고전은 고전이구나 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흥미로운 점들 투성이이기도 하다. 나는 시대의 생활상이나 피끓는 독립운동 영웅기 보다는 백년 전 사람이! 그것도 대단한 조기교육도 없이 마치 미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논의되는 여러 담론들을 끌어내고 주장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추측하건대 백범 선생의 방대한 독서 습관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천재는 홀연히 나타나는가 싶기도 하다. 이상은 내가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몇몇 포인트만 짚은 것이지만 말하자면 길고 설명하자면 끝도없다. 긴 글 쓰는게 무엇보다 큰 재주라고 떠오르는 것을 나열할 머리나 손으로 엮어낼 키보드 실력이 딸린다. 그런 면에서 또한번 백범 일지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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