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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종족’s 직장선배짝사랑기5>

눈을 떴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 상황을 객관화해본다. 여기는 그녀의 방이다.

그녀가 입었을 반팔티셔츠에 그녀가 입었을 수면바지를 입고 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면 티셔츠의 세제향이 듬뿍 맡아진다. 내가 쓰는 향과 다르다. 포근한 향이라 저절로 눈이 감기게 하는.. 언젠가 다른친구 집에서 맡았던 향 같기도 하다.

그게 퍼실이랬던가. 나중에 세제 뭐쓰냐고 물어봐야지. ㅎ

그거말고 참참참. 나는 왜 여기있는 것인가.

어제는 꽐라가 됐었다. 맞아.

거의 끌려오다시피 와서 개토했던 것 같다.

어제?

 

왠일로 퇴근시간도 넘기고 앉아있는 그녀가 저녁을 먹으러 가쟀다. 사무실에는 나, 그녀, 우리팀장님, 이렇게뿐이었다. 나는 나가는 사교모임 중 하나, 올해마지막 미팅이자 저녁식사약속이 있었다. 그녀와 밥을 먹은 적이 없는데 ㅠ ㅠ

다시 안올지도 모를 이 기회가 너무너무 아쉬웠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럼 우리팀장이랑 먹을까~한다. 응? 둘이서?  내가 그꼴은 못보징.

저녁약속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요~

저도 따라갈게요!ㅎ

(궁색하고도 부끄럽당…..그래도뭐!)

 

자연스레 양고기식당을 들어서는 그녀.

양고기를 좋아한댔다. 양, 흑염소, 얘네들은 특유의 그 노린내 때문에 나는 싫었는데.. 그녀가 데려간 곳은 매우 맛났다. 소주도 달게 느껴졌다. 그녀는 사이다와 섞어마시는 타입이었다. 평소 그녀의 열정적인 면을 높이 샀던 팀장님 또한 그녀의 징계를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부딪히는 술잔속에, 미묘하게 감지되던 공식적인 거리를 좁혀갔고 우리일, 우리인연, 힘들었던 지난일, 각자가 가진 비전등을 얘기하며 깔깔거리고 그만큼 술잔도 쌓이고 마음도 열어갔던 거 같다.

모임은?

아, 어차피 늦어버렸네요. 못간다고 연락할게요.

그렇게 약속도 깨고ㅠ

가볍게 반주하고 끝내려던 자리가 커져서 2차까지 갔었지. 어제 팀장님이랑 둘이서 4-5병은 마신듯하다. 미쳤구나야~ 거기서도 개토했던 거 같다. 그녀가 등을 두드려줬었고 일본어 배우는 내 상황을 기억해두고 일부러 그런건지, 일어못하는 팀장님 빼놓고 말하고싶었던 건지 일어로 뭐라뭐라  많은 말들을 해댔던 거 같은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잇쇼니 시와나세니나로-” 하던말. “와까루?와까루?” 그랬다.

맞아. 여러번 얘기했었다. ‘잇쇼니?’ 이사람은 이뜻을 알고 말하는걸까?내게?

위액까지 토해내며 괴로워하면서도 그생각을 한 게 뚜렷히 기억나니까 확실하다.

팀장님이 대리불러서 데려다 주신댔는데

자기집으로 가자고, 자기집으로 데려가겠다고 그랬다. ‘아오~ 그녀집에 갈수있다니! 아냐아냐 이렇게 토해대고 꽐라가 됐는데 민폐야 집으로 가야지, 아냐아냐 언제 또 그녀집에 갈 수있겠니—‘

내 안에서 두개의 내가 싸우고 있는 사이

대답못하고 있었는데 나는 택시에 실렸고

가다가 한번 내려서 길가에 토했던거 같다.

아오~ 정말ㅠ ㅠ 내가 왜그렇게 마셔댔는지.

못났다못났어—-

 

그렇게 두근거리며  몸은 가누지못해

그녀의 양팔에 의지한채 들어와서

곧장 화장실행. 변기를 부여잡고 그냥그러고 있었나보다.  그녀가 들어와서 지금 입고 있는 이옷으로 갈아입혀주고 손도 씻겨주고 발도 씻겨줬다.

응? 발까지?!  그와중에 속으로 놀라고 있는데

손도 발도 이렇게 작니, 못생겼어~ 구박하면서 비누칠해서 뽀득뽀득 씻겨줬다. 너무자연스럽게

그러고보니 발씻어주는 타인은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렇게 의지하는 사람도 처음이다.

갑자기 심장이 두배로 빨라진다. 내귀에도 내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하다.

 

“깼어? 머리안아퍼? 속은 괜찮아?”

그녀목소리. 옆에 있다. 어제일은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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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종족’s 직장선배짝사랑기4>

세대차이란 게 이런걸까.

징계사유는 내게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자기팀원 중 갓들어온 신입막내에게

신뢰이미지가 중요한 우리 직군의 특히나 외형적복장에 대해 얘기해주면서, 너무 비치는 그런 블라우스는 좀 삼가 입는 게 좋겠다—–라고 회식 술자리에서 가볍게 조언했다는데. 스물초중반의 그신입에겐 그게 너무 불쾌하고 기분이 나빴나 보다. 회사에다 그 일을 제보하여, 가뜩이나 미투운동바람을 타고 성희롱등등 제보를 받고 있던 본사에서 그것도 징계사유라고 경고를 줬단다.  세상에나! 나는 그런 사적인 조언이 감지덕지, 애정충만한 감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세대는 기분나빠하구나, 아!놀라고, 더놀랐을 그녀생각을 하니 맘이 아파서 또 놀란다.

그녀의 자리에 가보았다.

책상 물건들을 말끔히 치우고 명패도 없어진 걸 보니 더럭 겁이 났다.

‘다시 다른 곳으로 가려나? 어랏 뭐지?…’

다른 팀인데 근황을 물을 수도 없고. 난감했다.

 

그녀를 본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외근나갔다가 느즈막한 오후, 사무실 들어와보니 저너머 내가 늘 눈으로 체크하는 자리에 어랏, 사람이 있네! 머리색이 그녀다!

그녀 옆자리 선배한테 뭐 물으러가는 척하자!그러고

가까이 다가 가면서, 고개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뭐라 말은 붙여야겠는데 뭐라해야할까, 한10초동안 진짜 빛의속도로 머리를 굴려댔던 거 같다.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드는 그녀,

눈이 마주친 순간, 악악 뭐라그러지

말은 안나오고 눈은 고정됐는데 얼굴이 좀 수척해진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안쓰러워

절로 튀어나온 말,  “…….저,,,, 괜찮으세요?”

웃으면 이효리처럼 되어버리는 그 눈웃음으로

가볍게 “왜 왜~” 하시는데. 내맘이 먹먹해져서는

나도 모르게 내 눈가가 촉촉해졌나보다.

그러고 쳐다보니 “괜찮아~ 나 정말괜찮아.”한다.

 

아아. 생각해보면 그때부터였나보다.

누가뭐래도 내가 그녀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악악. 위험한 선을 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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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종족’s 직장선배짝사랑기3>

대박사건!

그녀가 왔다! 우리본부로. 게다가 나랑 같은 사무실! 같은공간!!!! 우히히히~~~ 뭐, 정확히는 우리팀 아니고 저~기 선배팀이지만. 어쨌든! 무튼!!

무튼!

.

.

.

하아……

근데. 참..

안보인다.

없어, 사람이~!!?!

 

좋은 건 잠시.  그녀는

전국을 누비며 다니는 매우바쁜 사람이었고,

골프 사격 볼링 등산 클라이밍 수영 마라톤 취미생활도 다양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는 그야말로 에너자이저형이었다.

피곤하다…… 생각만해도 피곤한 일정이다.

안좋아할래. 더이상 가지말자. 저분은 그냥 선배일뿐. 배울 것만 배우자!

좋아하는 마음을 조절이 가능하겠냐마는 그때는 업무적? 공식적? 인간관계가 다수비중이었으니조정도 가능했다. 그리고 나도 내 일로 정신없었고.. 그렇게 두세달이 지나갈 때쯤.

다른 소속일때보다더 말을 주고 받을 일도 없고신경쓰이는 것도 없이 차츰 소원해질 무렵

초대박사건!

그녀가 징계를 맞았다ㅡ는 소식?!

응?  뭐라고? 그분이 맞아? 정말? 왜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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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종족’s 직장선배짝사랑기2>

그녀는 오렌지계열의 밝은브라운톤 머리색에

긴단발, 나보다 두톤은 높은 듯한 목소리, 피아노건반같이 납작하고 단단해보이는 손톱에, 매끈한손가락, 쭉뻗은 각선미, 그리고 무엇보다 따라웃게 만드는 활짝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라지만, 사실. 이건 이제껏 내가 그녀를 훔쳐보며 찾아낸 나의 반한 포인트이고(이효리처럼 까만피부도 추가하자!ㅎ)

다른팀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잠깐 와보라구,

와서 인사하라고 해서 다가가 처음 봤던 그땐

이름만 듣던, 1본부 매출의 몇퍼센트를 차지하는 워낙 잘난사람이라 잔뜩 쫄아있어서 무슨말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다만 그 잘난사람이 신입몇개월차에 어리버리 한

나에게 정말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구나, 하는 감동만 어렴풋이- 남아있었달까?

확실히 그녀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내가 스스로에게 다시 파이팅하자! 하게끔 만드는 동기부여능력도 탁월했다.

이게 다였다면 그저 흔한 잘난선배와의 만남ㅡ이라는 진부한 일회성 이벤트였겠지만

우리(—-라고 하고싶다~ㅎ)의 인연이 역사?가 된건

그녀가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톡을 보내었던 것이다!

내가 소개하며 준 명함을 버리지않고 전번을 저장하고 톡을 보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했다니, 오 신이시여! 잘난사람이 참 따뜻하기도 하구나! 매우 감동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SNS친구가 되었다.

다른 본부였던 그녀의 소식은 그렇게 가끔 들여다 보는 SNS를 통해서였고

여전히 그녀의 잘난 매출실적과 마케팅전략, 허당적인 의외의 일상 등등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감히 입을 댈 수없어 소심하게 좋아요 정도 누르며 호응해주는 정도였다. 그땐 그랬다.

갖고싶지만 가질 수 없는, 나랑 너무나 반대의 기질을 가진 게 부러웠고 동경했었고 그리고 어려웠던 사람.

처음봤던 봄에서부터 3계절이 지나

다시 봄이 되어. 그 대박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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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종족’s 직장선배짝사랑기1>

우리를 일컬어 흔히 이반이라고 한다

이곳세계에서는 골치아프게 괜히 이성애자인 여자에게 빠져서 허우적대지말고 우리같은 종족?만나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그게 잘 안된다. 첫눈에 반하는 타입이라기보단 생활속에 의외의 면에서 으잉? 이런면이? 하고 스며드는 타입이라..

가뜩이나 소수인 바닥에서 제 짝만난 커플도 빼고 나면 소수에 소수. 그중에서 또 희귀한 팸투팸을 추구하려니 얼마나 정글같은 시장인가. 그래서 조금의 호감이 있다면 빨리 낚아채라고- 그런 조언이 지극히 정상적인 이곳 생리가, 가뜩이나 느린 내겐 회전율?바라보고 장사하는 음식점에서 빨리빨리 처먹고 나가~ 재촉받는 기분? 맛을 음미하며 먹는 걸 즐기는 내게 배만 얼른채우고 나가라니, 나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일반세계에서도 이반세계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름하야 제3종족.

나의 짝사랑기를 토해내볼까 한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나는 그나마 더 익숙한 일반세계에서 종종 반하곤 하는데

그래도 서른이 넘고 나서는 이쪽지인들의

천금같은 조언으로, 정신차리자, 매우경계하며 잘 살아왔…던 거 같은데 이렇게 또 신경쓰이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에겐 잘난 직장선배가 있다. 나보다 6살이 많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작년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