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이돌 컴피티션이라면 꽤 본 제가, 유일하게 예고편보고 보이콧 하던 프로그램이 <아이돌 학교>였습니다. 그 말해무엇한 대만/일본/한국에서만 워킹하는 소녀소녀한 표상을 기숙학교 컨셉으로 집어넣은 예고편을 보곤 정말 엠넷 으악이네 싶었거든요.

그래서 얼마전 뉴스에 <아이돌 학교> 출신 솜혜인 커밍아웃, 동성연애 중 같은 기사가 쏟아졌을때 처음엔 뭐야 듣보에 아이돌학교라니 안물안궁하고 싶었고, 트위터에서 학폭 가해자 관련 이슈가 있었던 친구라길래 딱히 언급을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 물론 동성애자는 정말 흔해 빠진 존재라, 학폭 가해자중에 동성애자가 있을리 없어! 같은 소리를 하려는건 아닌데요. 굳이 긍정적으로 언급되지 않을만한 이슈라 도덕성 싸움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그냥 조용히 입닥치고 있었다란게 더 맞는 표현일거 같아요. 다소 비겁하지만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사댓글을 보니 가만 있기 힘들더군요. 솜혜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그야말로 가관이었고, 특히 제 눈에 쏘옥 들어온건 “왜 꼭 동성애자들은 지들끼리 잘 살면 되지 이렇게 인정을 못받아 안달이냐” 였습니다. 그래서 솜혜인 인스타 캡쳐와 커밍아웃으로 받아들여진 첫 인스타 포스트를 찾아봤는데요. 깜짝놀랐어요.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요. ‘나의 예쁜 그녀’란 이름으로 올라온 사진 2장이 전부였고, 그 뒤에 사람들이 물어보니 동성연애(;;)하고 있다고 본인 인스타에 밝힌게 다입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솜혜인이 어디 프레스홀을 잡아서 공식 기자회견을 한것도 아니고, 연애한다며 꽁냥꽁냥 사진 한장 올린게 어떤 지점에서 인정을 원하는건지 도무지 알수 없었고요. 그럼 그 수많은 헤테로, 이성애자들이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건 뭐지? 그 모든 포스트들이 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에 행여나 방해를 놓을까, 둘의 사귐에 일일드라마극 반대/찬성 의견이 엇갈릴까 노심초사 하면서 올리는거였나요? 인정 받으려고?
왜 이성애자들은 자기들이 동성애자들의 연애에 대해 반대/찬성 혹은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거야 말로 연쇄살인범이나 혐오범죄자들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는 ‘비대한 자아’ 아닌지, 이 비대한 자아들은 어쩌자고 본인이 실제로 얼굴한번 본적 없는 동성애자들의 연애사를 인정할지 말지를 요구받는단 착각에 빠져든건지 정말 신기했고요.
그 뒤 솜혜인의 인스타를 보니 혹시나 불안했던 마음과 달리 시원하달까. 니들이 뭐라하든 난 내 갈길 갈거고 계속 깝치면 고소각이다.라는 내용(물론 표현은 이렇지 않았지만)으로 아주 깔끔한 마무리를 하는걸 보며 역시 밀레니얼은 다르군! 이란 생각도 들고 왠지 안심이 됐습니다.

사실 동성연애란 표현도 동성애를 성적인 의미로만 포커싱/왜곡하니 쓰지말자가 된거지 이성연애, 동성연애가 어떤 순간의 행위를 지칭하는덴 더 맞는거 아닌가도 싶고요. 연애한다는 표현은 다들 흔히 쓰잖아요. 근데 왜 거기 동성이 붙으면 헐쓰- 안돼!가 되야하는건지..
여하튼 이런 대응까지 보고나니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커밍아웃을 해야할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의 개념을 ‘은근히’ 잘 보여준 사건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커밍아웃은 ‘인정’받으려 하는게 아니라 그 자체로 너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선언’이라는것을. 사람들도 다 압니다. 상대가 말을 할때의 태도에 비춰 자신이 이 대화에서 어떤 권한을 갖고 누가 주도권을 갖는지요.
그러고보니 저도 커밍아웃을 할때 이 규칙을 지켰던것 같습니다.
- 대단한 인정을 바라는게 아냐.
- 그냥 알고 있으라고.
- 네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이 3종 세트면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너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너를 진심으로 대하고 싶어한다는게 다 잘 전달됐습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근데 나 니들 좋아한적은 없다. 혹시 오해마라는 말에 아니 어떻게 날 안 좋아할수가 있냐며 은근히 서운해 하던 경험도 하게 됐고요.
뭐가 됐든 커밍아웃의 여러 면모 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도 감히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지하는 사이가 주는 편안함이요. 그게 실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관계의 진정한 모습 아닐까요. 그러니 부디 동성애자라는 고백보다 채식주의자라는 고백이 더 충격적이고, 관계의 한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날이 올때까지(동성애자에, 채식주의자인 분들을 저격하려던건 아닙니다만;;) 모두 조금은 시큰둥한 커밍아웃을 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끝.
ㅇ